나또와 청국장은 겉보기엔 너무도 닮아있습니다. 끈적한 실을 뽑으며 발효된 콩의 모습, 특유의 고소하면서도 강한 발효 냄새, 그리고 몸에 좋다는 공통점까지. 이 때문에 종종 "일본의 나또는 조선의 청국장에서 유래한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실제로 나또와 청국장은 같은 발효균, 즉 **고초균(Bacillus subtilis)**을 이용한 발효식품이기 때문에 그 뿌리를 추적하면 어디선가 만났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음식문화의 기원은 단순한 모방이나 전파로 설명되지 않는 복잡한 역사와 환경적 맥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일본의 나또가 조선 청국장에서 유래했는지, 아니면 독자적인 발달을 거친 결과인지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해보겠습니다. 역사적 문헌, 고고학적 근거, 발효 기술, 문화적 요소, 국제 교류의 맥락 등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하며 진실에 접근해보고자 합니다.
지금부터 총 20개의 주제로 나또와 청국장의 유사성과 차이점, 발효법의 기원, 역사 기록, 조리 방식의 문화적 차이,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진화 과정을 철저하게 살펴보며, 그 진짜 뿌리를 파헤쳐보겠습니다.
나또와 청국장의 외형적 유사성과 차이점
청국장과 나또를 나란히 놓고 보면 육안으로는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비슷합니다. 모두 삶은 콩을 발효시켜 만들어지며, 끈적한 점액질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두 음식은 발효 방식과 첨가 재료, 조리 목적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청국장은 주로 국이나 찌개 형태로 요리되며, 발효가 더 깊고 발효취가 강한 편입니다. 반면 나또는 간장, 겨자 등과 함께 날로 섭취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비교적 짧은 발효 기간으로 담백하고 상큼한 맛을 유지합니다. 또한 나또는 식사 때 밥에 얹어 먹는 '토핑형 음식'이라면, 청국장은 '조리 재료형 음식'이라는 점도 다릅니다.
발효 미생물의 공통성과 분리된 전통
두 음식 모두 Bacillus subtilis라는 고초균에 의해 발효됩니다. 이 균은 볏짚, 흙, 자연 속에 흔히 존재하며, 콩을 삶은 후 볏짚과 함께 따뜻한 곳에 두면 자연스럽게 발효가 일어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고초균을 이용한 콩 발효 방식이 동아시아 전역에서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한 쪽이 다른 한 쪽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기보다, 각 지역의 자연환경과 저장 방식에 의해 동시다발적으로 유사한 음식 문화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나또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일본의 주장
일본에서는 나또의 기원을 기원후 11세기경, 헤이안 시대(平安時代)의 장군 '미나모토노 요시이에'가 전쟁터에서 삶은 콩을 짚에 싸서 급하게 보관하면서 자연스럽게 발효되었다는 설화로 설명하곤 합니다. 이 사건은 ‘와라즈메 나또(藁詰め納豆)’의 기원으로 자주 인용됩니다.
또한 15세기 중반 이후 사찰 음식과 함께 전국적으로 퍼졌으며, 특히 동북지방에서 본격적인 식문화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기록보다는 구전 설화에 가깝고, 보다 명확한 문헌은 에도 시대 이후에야 등장합니다.
청국장의 역사적 기록은 더 오래되었을까?
한국의 청국장은 삼국시대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으며, 고려시대 문헌인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과 조선시대의 『임원경제지』, 『산림경제』 등에서 청국장의 조리법 및 약효에 대한 언급이 다수 등장합니다. 특히 조선후기에는 청국장이 감기, 복통, 설사에 효과적이라는 기록까지 확인되며, 민간요법으로서도 활발히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문헌상으로만 보면 청국장의 기원이 나또보다 더 이르고, 구조화된 조리법도 먼저 등장합니다. 이는 일본 나또의 기원이 청국장의 영향일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줍니다.
조선과 일본 간의 음식 교류 가능성
조선과 일본은 역사적으로 수많은 교류를 해왔습니다. 특히 임진왜란(1592~1598)과 통신사 외교, 왜관 교류 등은 물자와 문화를 포함한 다양한 전파 경로가 되었습니다. 전쟁 중 조선의 음식, 의술, 생활도구가 일본으로 넘어간 사례는 다수 확인됩니다.
실제로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서 포획된 인물들이 일본에 정착하며 조리법을 전한 기록도 존재합니다. 특히 발효식품은 저장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전시에 더더욱 중요하게 여겨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청국장이 나또의 직접적 기원이라는 주장
일부 한국 학자들은 일본의 나또가 청국장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을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 조선에서 먼저 발달한 발효 기술이 일본으로 전해졌다는 것
- 고초균을 활용한 방법이 조선 문헌에 먼저 등장한다는 것
- 조선통신사와 같은 외교 채널을 통해 전파되었을 가능성
특히 조선통신사 기록 중 조리법과 관련된 정보가 오가던 정황이 다수 포착되며, 문화 교류 속 발효식품이 주요 주제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일본의 반박과 독자 기원론
반면 일본의 학계에서는 나또가 조선 청국장과 무관하게 일본 고유의 저장 문화와 자연환경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했다는 입장도 존재합니다. 일본은 습윤한 기후와 벼농사 중심의 문화가 발효 환경 조성에 적합하였고, 불교의 사찰 음식 발전과 함께 나또가 독자적으로 정착했다는 설명입니다.
또한 '나또(納豆)'라는 명칭은 일본식 한자어로, '절(寺)에서 콩을 저장한다'는 의미를 지니며, 이 역시 독자 기원론의 한 근거로 활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