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마트에서 손쉽게 간장을 구입할 수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간장을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특히 간장은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라 음식의 간을 맞추는 핵심 요소이자, 식생활의 중심에 있는 중요한 발효식품이었습니다. 간장은 ‘장(醬)’ 문화의 대표 주자로서 된장, 고추장과 함께 ‘삼장(三醬)’이라 불렸으며, 조선의 식탁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였습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자연 환경과 경험을 바탕으로 발효의 원리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실생활에 적용했습니다. 간장을 만드는 과정은 단순히 콩을 삶고 소금을 넣는 것이 아니라, 계절의 흐름과 미생물의 활동, 숙성의 원리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한 고도의 과학이자 예술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조선 시대 간장 제조는 ‘시간’과 ‘정성’이라는 두 요소가 반드시 필요했던 전통 발효 기술의 정수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조선시대 간장을 만드는 전통 방법을 역사적 문헌과 실제 조리 방식, 당시 사람들의 생활 문화와 연결하여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그 속에 담긴 철학과 과학, 조상의 지혜를 통해 우리가 지금 간장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간장의 어원과 조선시대 간장의 위치
‘간장’이라는 단어는 조선시대에도 널리 사용되었으며, ‘장국(醬國)’이라고 불릴 만큼 조선은 장류 중심의 음식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선 전기의 문헌인 『산림경제』, 『규합총서』, 『임원경제지』 등에는 간장 제조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당시의 장 담그기 문화가 매우 정교하고 체계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간장은 장(醬)의 윗물로 인식되어, 된장을 담그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추출되는 ‘액체’로 얻어진 것이 원형입니다. 즉, 된장을 만들면서 생긴 부가물이 간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간장만 따로 담그는 방식도 발전하게 되며, 다양한 맛과 색, 향이 만들어졌습니다. 조선시대 간장은 그 자체로 국, 찌개, 조림, 나물무침 등에 광범위하게 활용되었고, 음식의 품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간장 제조의 시작은 메주 만들기부터
간장의 핵심 재료는 ‘메주’입니다. 메주는 삶은 콩을 찧고 일정한 형태로 뭉친 뒤, 볕 좋은 곳에서 말리고 발효시킨 콩 덩어리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음력 10월 말부터 11월 초 사이에 메주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이때 만든 메주는 겨울을 지나 이듬해 장 담그기 시즌인 2월~3월경까지 숙성시켰습니다.
메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콩을 깨끗이 씻어 삶은 다음, 절구나 방망이로 곱게 찧습니다. 이후 손으로 동그랗거나 네모나게 모양을 만들어 새끼줄에 묶어 서늘한 곳에 매달아 말렸습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메주 표면에 하얀 곰팡이부터 노란 곰팡이, 녹색 곰팡이까지 다양한 미생물이 자라나며 자연 발효가 시작됩니다.
이때의 메주는 된장과 간장의 품질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발효 상태가 좋지 않으면 장맛이 심하게 떨어지기 때문에 정성과 위생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또, 집안의 장독대 위생 관리도 필수였습니다.
장 담그기 계절과 풍속
조선시대에는 ‘장 담그는 날’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일반적으로 음력 정월 대보름 전후나 음력 2월 첫 번째 정한수(丁日)를 길일로 삼아 장을 담갔습니다. 이 날은 하늘에 정화수 올리고 조상을 기리며 ‘장이 잘 되게 해달라’는 기원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장 담그기는 단순한 음식 준비가 아닌, 일종의 의례이자 가족 행사로 여겨졌습니다.
장을 담그는 날에는 절대로 말다툼을 하거나 불쾌한 일이 없어야 한다고 믿었고, 깨끗한 옷을 입고 손과 몸을 씻은 뒤 정갈한 마음으로 메주를 항아리에 담았습니다. 풍속에는 ‘집안의 장맛이 그 집안의 인격을 말해준다’는 속담도 있었을 만큼 간장은 단순한 양념이 아닌 가족의 품격을 드러내는 척도이기도 했습니다.
간장 담그는 구체적인 순서
조선시대 간장 만들기 과정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 메주 준비
메주를 약 40일 이상 자연발효시켜 완전히 건조된 상태로 준비합니다. 이때 곰팡이가 적절히 피고 내부까지 건조된 것이 중요합니다. - 소금물 만들기
장 담그는 당일, 굵은 천일염을 사용하여 끓여 식힌 소금물을 준비합니다. 염도는 약 15~18%로, 계란이 뜨는 정도가 이상적입니다. - 장독에 메주 담기
항아리를 깨끗이 씻고 말린 후, 바닥에 숯, 마른 고추, 대추 등을 깔아 잡균과 해충을 막습니다. 그 위에 메주를 층층이 쌓고, 식힌 소금물을 붓습니다. - 덮개 덮기와 발효
항아리 입구를 깨끗한 헝겊이나 종이로 덮고, 뚜껑을 덮은 후 바람이 잘 통하는 장독대에 보관합니다. 직사광선은 피하되 햇볕이 드는 곳이 이상적입니다. - 중간 뒤섞기와 간장 떠내기
약 한 달 반에서 두 달이 지나면 장 위에 뜬 액체를 걸러내어 끓인 후 간장으로 사용합니다. 이 간장이 바로 ‘진간장’의 원형입니다. - 된장 분리 및 숙성
간장을 뜬 후 남은 메주는 된장으로 분리해 따로 항아리에 담고 숙성시킵니다. 이때 고추, 마늘, 다시마 등을 첨가해 된장의 풍미를 더했습니다.
숙성과 저장 환경의 중요성
조선시대 장독은 대부분 옹기로 만들어졌습니다. 옹기는 숨을 쉬는 질그릇이기 때문에 발효에 필요한 공기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조절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항아리의 형태, 두께, 입구의 크기까지도 발효 상태에 영향을 주었으며, 장 담그는 집에서는 항아리를 비닐이나 플라스틱이 아닌 천으로 덮어 내부 공기가 순환되도록 했습니다.
또한 장독대를 햇볕이 잘 드는 남향이나 동남향으로 두고, 장독 사이에는 공간을 띄워 바람이 통하게 했습니다. 장독 밑에는 받침돌을 두어 물이 고이지 않도록 했으며, 비가 오면 장독 입구에 덮개를 추가로 덮어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했습니다. 이처럼 자연과 환경을 이용한 저장 방식은 간장의 품질을 높이는 결정적인 요소였습니다.
간장의 종류와 쓰임새
조선시대 간장은 용도와 숙성 기간, 염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뉘었습니다.
- 진간장: 메주에서 처음 떠낸 맑은 간장으로 색이 진하고 감칠맛이 뛰어남. 주로 국간장보다 짜지 않고 볶음, 조림 요리에 활용됨.
- 국간장: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떠낸 간장으로, 염도가 낮고 색이 연하며 맑은 국물 요리에 주로 사용됨.
- 숙성간장: 여러 해 동안 보관하여 맛이 더욱 깊어진 간장으로, 특별한 요리나 제사 음식에 사용되기도 함.
이 외에도 장을 더 오래 묵혀 만든 ‘묵은장’, 재탕한 간장을 끓여 농축시킨 ‘조림간장’ 등 다양한 변형이 존재했습니다. 이러한 간장들은 음식의 풍미를 좌우하는 핵심 양념으로 자리잡았고, 장맛 하나로 음식 솜씨를 평가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