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발효식품의 역사 속에서 찾는 청국장의 기원과 조선시대 식문화
한국인의 밥상에서 빠질 수 없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청국장’입니다. 강한 향과 깊은 감칠맛으로 호불호가 갈리지만, 발효식품의 대표주자로서 건강식으로도 각광받고 있죠. 그렇다면,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는 이 청국장은 과연 조선시대에도 존재했을까요? 조선시대 사람들도 지금처럼 청국장을 끓여 밥상에 올렸을까요?
이 질문은 단순히 음식의 유무를 넘어 조선시대의 발효 기술, 농업 생산력, 서민의 식생활과 식재료 이용법 등 다양한 역사적 맥락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히 청국장은 ‘된장’이나 ‘간장’과는 다른 발효 메커니즘과 제조 방식이 있기 때문에, 과연 조선시대에 이런 식품이 가능했는지, 있었다면 어떤 이름으로 불렸는지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청국장’과 당시 만들어졌던 유사한 음식이 동일한 것인지, 혹은 다른 조리법이나 이름으로 존재했던 것인지를 파악해야 정확한 이해가 가능합니다.
이 글에서는 조선시대 문헌, 발효식품의 역사, 그리고 민속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청국장의 존재 여부와 그 당시 사람들의 식생활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었는지를 심도 있게 다루어보겠습니다. 아울러 조선시대의 발효 기술 수준과 관련된 기록을 함께 분석함으로써, 청국장의 실체와 역사를 더욱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청국장의 어원과 기본 개념
청국장은 삶은 콩을 자연적으로 발효시켜 만든 장류로, 주로 짧은 시간 내에 발효가 진행됩니다. 현대 청국장은 Bacillus subtilis라는 고초균에 의해 발효되며, 된장보다 제조 과정이 간단하고 발효 기간이 짧습니다. ‘청국장’이라는 이름은 사실 근대 이후에 정착된 이름이며,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널리 퍼진 용어입니다. ‘청국’은 ‘청나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맑은 나라’ 혹은 ‘맑게 만든 장’이라는 해석이 존재합니다.
또한 ‘청국장’은 일본에서도 ‘낫토’와 유사한 방식으로 전래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그 기원은 고대 동아시아 전역에 걸친 발효 콩 문화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청국장이 조선시대에 있었는지를 알아보려면, 이름보다는 유사한 발효 콩 식품이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선시대 발효식품 문화의 전반적인 특징
조선시대는 발효식품의 전성기였습니다. 된장, 간장, 고추장, 식초, 젓갈 등 다양한 발효식품이 존재했고, 각 지방마다 고유한 발효 기술과 레시피가 있었습니다. 이는 조선의 농업 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계절에 따른 식재료 보존 및 건강 관리를 위한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습니다. 조선후기에는 유교적 이념이 강조되면서 집안 내 장독대 문화가 자리잡았고, 이는 가정 단위에서 장류를 직접 담가 먹는 풍습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시기의 발효 기술은 오늘날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정교했고, 자연 발효를 활용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주재료인 콩을 발효시키는 방식도 다양했으며, 특히 여름철 빠르게 장을 만들어 먹기 위한 ‘속성된장’ 혹은 ‘빠른 장’의 개념이 문헌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청국장의 유사 식품, ‘속된장’ 혹은 ‘속성장’
조선시대 문헌 중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산림경제(山林經濟)』 등의 농서나 생활백과류에는 빠르게 만드는 장, 즉 ‘속성장’에 대한 언급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 속성장은 삶은 콩을 뜨거운 상태에서 짚과 함께 발효시키는 방식으로, 2~3일 안에 완성되며, 현재의 청국장과 거의 동일한 방식입니다. 특히 짚 속에 존재하는 고초균이 자연 발효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청국장의 발효 방식과 일치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학계에서는 조선시대에도 ‘청국장’과 동일하거나 매우 유사한 식품이 존재했으며, 다만 지금과 같은 명칭으로 불리지 않았을 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지역에 따라 ‘덜 된장’, ‘장국콩’, ‘썩힌콩’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조선 후기 서민들의 단백질 보충식으로서의 역할
조선시대에는 육류의 섭취가 제한적이었고, 서민들은 대부분 식물성 단백질을 통해 영양을 보충했습니다. 콩은 단백질이 풍부하고 구하기 쉬운 재료로서, 다양한 조리법으로 이용되었습니다. 특히 겨울철 저장식이나 여름철 빠르게 반찬을 준비해야 할 때, 속성장 형태의 장류는 매우 유용한 식품이었습니다. 따라서 청국장류의 음식은 서민층을 중심으로 널리 소비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식품은 종종 국이나 찌개의 형태로 조리되어, 지금 우리가 먹는 청국장찌개와 매우 유사한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현대인의 입맛에는 다소 강하게 느껴질 수 있는 발효취도, 당시에는 보관을 위한 필수 요소로 여겨졌고, 오히려 건강식으로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조선시대 요리서 속 청국장 관련 기술
조선시대 대표적인 요리서인 『음식디미방』이나 『규합총서』에는 직접적으로 ‘청국장’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지만, 발효 콩을 이용한 장 만들기나 찌개 끓이는 법에 대한 언급은 자주 나옵니다. 이 중 일부는 콩을 단독으로 발효시킨 후 국물 요리로 사용하는 기술로, 오늘날 청국장 조리법과 흡사합니다.
특히 『음식디미방』에는 콩을 삶은 후 짚에 묻어 발효시키는 과정과, 발효된 콩을 다시 짓이겨 찌개로 끓이는 방법이 소개되는데, 이 과정은 사실상 청국장의 제조법과 동일합니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의 발효 식문화가 이미 청국장의 기초를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청국장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문헌 사례
조선 후기 실학자 홍만선이 지은 『산림경제』에는 “콩을 삶아 볕이 잘 드는 곳에 두고 이틀이면 곧 장이 된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는 일반 된장처럼 장기 숙성을 거치지 않고 단기간 내 발효를 유도하는 장류로, 청국장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문장입니다.
또한 『임원경제지』에서도 비슷한 방식의 장 담그기가 소개되며, 현대 학자들은 이들 문헌을 근거로 조선시대 청국장 유사 식품이 존재했음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조선시대에 청국장은 존재했다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조선시대에 ‘청국장’이라는 명칭은 존재하지 않았을 수 있으나, 그와 동일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발효 콩 음식은 분명 존재했습니다. 특히 속성장이나 속된장, 장국콩 등으로 불렸으며, 그 제조 방식과 용도가 오늘날 청국장과 매우 유사합니다.
조선시대의 서민 식생활 속에서 청국장은 단백질을 공급하는 중요한 식품이었고, 발효 기술을 활용한 뛰어난 저장식으로 기능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며, 현대 청국장이 조선시대 장류 문화의 연속선상에 있음을 보여줍니다.